선사시대 경기만의 유적과 유물 | 경기만 에코뮤지엄

경기만의 유산


선사시대 경기만의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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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바다의 자원을 이용하는 방식과 그 내용은 다른 동물들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갯벌이나 얕은 여울을 포함하는 바다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량을 조달해 온 인류의 생계방식은 태고부터 지속되어 온 인류의 생활 중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해안에서의 어로가 육지에서의 수렵보다 훨씬 더 용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시대 경기만의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조사·발굴되어진 유적과 유물을 통해 그 흔적을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다.

 

 

구석기 시대 

경기만은 구석기시대부터 한데유적(Open Site)이 나타나고 있으며 도서 혹은 해안가·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경기만에서는 1990년대 후반 공항 건설 등 국책 사업 등으로 인한 구제발굴이 실시되어 많은 고고학적 성과를 거두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견된 경기해안의 구석기 유적의 입지는 바닷가나 강가 내륙의 구릉지역에서 모두 나타난다. 강가의 경우는 경기만 내륙에 해당하지만 고지형성 해안과 인접한 상태이며, 경기만에서는 화성 구문천리, 평택 원정리, 군포 대야미동, 인천 영종도·삼목도·강화도의 해안가에서 발견되었다. 해안지형에 위치한 유적은 해안가에 접한 얕은 구릉 혹은 산록완사면에 입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다의 파랑이나 해풍으로 인한 자연재해, 사냥·어로의 용이함, 내륙 왕래의 편리함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해안가에 형성되는 해식동(海蝕洞)의 경우도 구석기인의 집터로서 유용하지만 경기만 지역의 경우 발달이 미약하여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경기만과 백령·연평도 등 주변 도서지역은 내륙인 옹진반도와 연륙되어 있었기 때문에 구석기의 발견가능성은 매우 크다. 경기만과 접한 충남 해역 그리고 전남해역 등 황해전역에 걸쳐 뗀석기와 고토양층이 골고루 발견된 바 있어 구석기인들의 넓은 활동범위를 가늠케 한다. 나아가 경기만 지역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뗀석기의 비중이 높아 경기 도서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오랜 전통을 가늠해 주고 있다.

경기만에서의 구석기시대 유물은 뗀석기가 주종을 이룬다. 각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주먹도끼(Hand-axe)·몸돌(석핵, Core)·격지(석편, Flake)를 비롯하여 사냥용 찍개(Chopper)·사냥돌(Bola stone)·자르개(Cleaver)·찌르개(Point)와 부엌 조리용인 긁개(Side scraper)·밀개(End scraper) 등이다. 석기의 재료는 보통 석영제 자갈돌인데, 석영 석기는 구석기시대의 전 시기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경기도 해안지역의 경우도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만 일대의 구석기 유적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화성 구문천리 유적(화성시 향남읍 구문천3리)

이 유적은 서해안 고속도로 안산-안중간 건설 구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1994년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유적은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발안천 언저리에 있다. 유적 주변에는 지질학 제4기의 고토양층이 넓게 분포한다. 유적의 지층은 위로부터 ① 1층 : 겉흙층(두께 약 30cm), ② 2층 : 적갈색 모래질 찰흙(두께 약 40cm), ③ 3층 : 적황색 모래질 찰흙(두께 약 70~150cm), ④ 4층 : 기반암풍화층이다. 위 지층 가운데 3층의 상부에 토양쐐기가 발달하였다. 뗀석기는 3층에서만 확인되었다. 석기의 돌감은 대부분 석영과 규암으로 이루어진다.

 

② 평택 원정리 유적(팽택시 포승면 원정리 산 109-430 일대)

이 유적은 아산국가공단의 조성사업에 따른 평택터미널 건설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1995년과 1996년에 걸쳐 아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유적은 아산만과 남양만을 가로지르는 돌출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구석기 유적이 바닷가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원정리 유적은 매우 희귀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원정리 유적에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층 아래에 고토양이 존재하며, 이 고토양층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발굴되었다. 출토한 석기의 돌감은 대부분 석영이다. 석기의 종류로는 밀개·긁개·톱니날 등이 있다. 한편 조개더미층 보다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에 두 차례의 토양쐐기가 발달한 지층이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도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③ 군포 대야미동 유적(군포시 대야미동 62-5(임) 일대)

이 유적은 신갈-반월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1988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유적의 남서쪽에는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반월천이 위치하고 있다. 유적의 지층은 위로부터 ① Ⅰ층 : 현재의 겉흙층, ② Ⅱ층 : 메꾸어진 층, ③ Ⅲ층 : 본래의 겉흙, ④ Ⅳ층 : 옅은 갈색흙층, ⑤ Ⅴ층 : 연노랑 갈색흙층, ⑥ Ⅵ층 : 석비레층(바닥층)이다. 유물은 Ⅵ층(두께 약 10cm)에서만 출토되었다. 긁개·밀개·홈날·주먹대패·망치돌 등이 나왔다. 이밖에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에서 찍개와 여러면석기가 출토되었고, 강화군 하정면 장정리와 내가면 오상리에서 찍개 등이 채집되었다. 영종면 송산리에서 몸돌과 찍개 등이 출토되었고, 옹진군의 백령도·연평도에서 찍개·긁개·격지 등의 뗀석기가 발견되었다. 평택시의 포승면 희곡리·홍원리·석정리, 현덕면 운정리, 안중면 대반리·용성리·송담리·현화리, 오성면 양교리에서 뗀석기가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

기원전 10,000년 경 추운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기후가 오늘날과 같이 따뜻해지면서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바뀌었다. 신석기시대는 간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한 시대를 의미했다. 이 시기는 농경과 목축으로 대표되는 식량 생산의 개시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여기에 정주(定住)마을, 토기, 간석기가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이를 ‘신석기 혁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정의는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토기의 등장을 신석기시대 시작의 지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생업경제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에서는 사냥, 채집, 물고기·조개잡이가 중심이 되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점점 확대되나 서해중부지방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농사가 지어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집자리가 중심을 이루는 마을유적과 해안가나 섬에서 확인되는 조개더미(貝塚) 유적이 대부분이다. 경기도의 유적이 이처럼 양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주거 유적과 야영지 유적인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조개더미 유적은 남해안에서는 덧무늬토기 단계에, 서해안에서는 빗살무늬토기 단계에 등장하지만, 후기에 들어서야 그 숫자가 급증한다. 남해안 패총과는 달리 서해안 패총의 대부분은 거의 굴 껍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물은 극히 드물다. 이것은 정주마을과는 기능이 다른, 즉 일시적 거주 지점이라 부를 수 있는 단기 사용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편 서해안의 조개더미에서는 내륙이나 해안의 마을 유적과는 달리 매우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발견되는데, 이는 조개더미가 한 마을에 의해 소유된 것이 아니라 여러 집단에 의해 공유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기만 일대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적은 주로 내륙 강변의 충적대지와 강의 지류, 해안가, 섬 지역에 분포한다. 안산 신길동, 시흥 능곡동, 화성 석교리 등이 대표적이다. 능곡동과 석교리에서는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서해안의 해안가나 섬에서 확인된 조개더미 유적은 어패류를 일차가공한 후 생선뼈나 조개껍질 등을 버려 남겨지게 된 일종의 쓰레기터이다. 경기만 지역에는 황해도와 인접한 백령도·연평도부터 남으로 덕적군도 이남까지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분포하는데, 대부분의 섬에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가 발견되고 있다. 시흥 오이도를 비롯하여 안산 대부도 흘곶, 대연평도 까치산, 소연평도, 용유도 을왕동 유적 등이 있다.

경기만 일대 유적의 입지는 다음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해안가 낮은 구릉대지(해발 50m 내외)로 섬의 중심에서 해발고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뻗어간 가지 능선 지형이다. 이 지형은 주변의 조망이 유리하며, 채집과 수렵 어로 활동이 용이하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안면도 고남리, 영종도 눈들 유적이다. 둘째는 산록완사면 지형으로 해안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완만한 지형 내지 바닷가 부근의 평탄한 경작지를 들 수 있다. 주변 지역은 만(灣)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로 남향(南向)이다. 이 지형은 해안가로 뻗은 능선 사이에 만입된 곳으로 자연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소야도 조개더미나 영흥도 외리 조개더미, 백령도의 말등 조개더미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해안가의 사빈이나 사구·사주, 그리고 해식동 등이다. 이 경우는 해수의 직접적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모래사장 주변 지형이다. 모래사장의 전면에는 갯벌이 발달하여 있고, 후면에는 사구(砂丘)가 형성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강화도 동막, 영종도 송산, 덕적도 서포리 유적이 있다. 또 인접한 두 섬 사이에서 조류 혹은 연안류에 의해 모래톱이 형성되기도 하는데, 이것과 관련된 유적으로 삼목도 유적, 오이도 소래벌 유적이 있다.

경기만 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시도 조개더미 유적(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리 일대)

시도에서는 모두 4기의 조개더미가 조사되었으며 이 중 3기가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이다. 1970년 국립박물관이 조사하였다. 제1지구 조개더미는 3개의 조개더미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서 15m~20m의 범위에 패각층이 분포하며, 표토를 제외하면 두께 약 50cm 가량의 순패각층과 그 아래의 검은색 부식 토층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층위이다. 패각층 아래의 부식토충 바닥과 패각층 사이에는 타원형 화덕자리가 각각 1기씩 조사되었다.

토기는 암사동, 미사리 등지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중서부지역의 구분문계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생선뼈무늬의 서해안식토기(시도식)들이 출토되었다. 이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해안식토기이다. 석기는 수량이 매우 적으며 돌화살촉과 갈아 만든 돌도끼, 돌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제2, 3지구 조개더미에서는 1지구와를 다르게 대부분의 토기가 구분문계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각 지구 조개더미에서 출토되는 토기가 이와 같이 다른 것은 서로 간에 퇴적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시도조개더미는 서해안 일대에서는 처음으로 정식 발굴조사된 조개더미 유적이며 중서부 내륙지역과는 다른 서해안지역의 문화양상을 파악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② 오이도 조개더미 유적(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일대)

오이도는 현재 개발로 인해 섬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고, 갯벌의 매립으로 육지화되어 있다. 오이도에는 섬 둘레에 걸쳐 북부 조개더미군(안말조개더미·뒷살막조개더미·소래벌조개더미), 서남부 조개더미군(가운데살막조개더미), 남부 조개더미군(신포동조개더미) 등이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북부지역 조개더미군만이 잔존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파괴되었다. 2002년 사적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오이도 조개더미 대부분은 신석기시대 조개껍질층 위에 삼국시대 조개껍질층이 퇴적된 양상을 보이며, 초기철기시대·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조개껍질층도 확인되었다. 발견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는 구분문계 토기와 서해안식 토기가 모두 보이나 유적마다 출토 양상은 다르다. 신석기시대 유구로는 신포동 조개더미·가운데 살막 조개더미·뒷살막 조개더미에서 야외 화덕자리가 발견되었으며, 가운데 살막 조개더미·뒷살막 조개더미에서는 구덩(수혈식)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석기는 갈돌·갈판, 홈돌, 돌도끼편 등이 출토되었다.

오이도에서는 많은 조개더미가 형성되어 있고 그 시기도 신석기 전기에서 후기를 관통하고 있다. 가장 많은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으로 서해안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③ 초지리(별망) 조개더미 유적(경기도 안산시 초지동 일대)

1974년 발굴조사되었으며, 바닷가에 면한 해발 48m 야산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 아래 패각층이 있고 그 하분에 부식토층이 퇴적되어 있는 간단한 퇴적양상이다. 부식토층 상면과 패각층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으나 패각층에서는 원삼국시대 유물이 혼재하고 있다. 유구로는 부식토층 상면에서 주위에 할석을 돌려 만든 지름 60cm 가량의 야외노지가 1기 조사되었다. 토기는 일부 구분문계 빗살무늬토기도 있으나 대부분 서해안식토기가 주를 이룬다. 석기로는 간돌도끼, 숫돌만이 출토되었다.

 

④ 연평도 조개더미 유적(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 일대)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를 말하며 백령도·대청도·소청도와 함께 서해안 5도서를 구성한다. 연평도에는 총 16개소의 조개더미가 확인되었다. 이곳 토기들의 문양은 부위의 구별 없이 전면에 동일하게 새겨져 있어 연대는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각 조개더미의 높이가 약간씩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당시 해안선의 변동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⑤ 영종도 는들 유적(젓개마을)(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산155번지 일대)

는들 유적은 영종도의 남서지역에 위치하며 바다를 면한 해발 20~50m 정도의 낮은 구릉사면과 정상부에 걸쳐있다. 서해안의 대부분의 유적이 조개더미 유적임에 비해 는들 유적은 조개더미가 아닌 주거 유적이다. 는들 유적에서는 구릉 정상에서 대형의 회자형 방형구 1기와 그 내부에 있는 야외노지 3개, 소형수혈 18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의 하단부에서는 소형야외노지 1기, 중복된 방형주거지 2기가 조사되었다. 

서해안지역에서 조개더미 이외의 유적이 조사된 경우도 적거니와 이처럼 주거지와 야외노지, 수혈, 구(溝)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한 유적에서 출토된 경우는 는들 유적이 처음이다. 특히 방형·원형의 주거시설은 서해안지역에서는 예가 매우 드문 것으로 주목되며 회(回)자형 방형구(方形溝)는 신석기시대 유구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조사된 것으로 제사유구로 보고 있다.

토기는 대부분 단치 횡주어골문과 단치 단사선문이 주를 이룬다. 그 외에 숫돌·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양상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중기 후반이나 후기 초반 유적으로 추정된다.

 

⑥ 영종도 송산 유적(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 일대)

송산 유적은 영종도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바로 바다에 인접해 있는 모래사장 위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은 해안에 노출되어 있어 바닷물이 드나들 때마다 침식되며, 지층은 표토층, 노란 모래층, 검은 모래층, 흰 모래층으로 구분된다. 맨 아래의 검은 모래층에 신석기시대 21기의 화덕자리(야외노지)가 발견되었다. 화덕자리는 대부분 원형으로 할석을 한두 벌 깔아 만든 시설이다. 는들 유적과 함께 조개더미가 아닌 서해안 유적으로 주목된다. 아마도 주변에 주거 유적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단치구로 시문한 동일계 횡주어골문토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또 이른바 금강식토기편도 출토되어 충청 내륙지역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석기로는 석촉, 갈돌·갈판, 숫돌, 고석 등이 출토되었으며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흑요석제의 격지석기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토기의 양상으로 보아 중서부지역 신석기 후기 전반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볼 수 있다.

 

⑦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일대)

남서쪽 해안가 백사장에 위치한다. 층위는 표토층 아래 황백색 사질층인 신석기시대층이 있고 그 아래는 무유물층이다. 유기는 화덕자리만이 18기 확인되었다. 화덕자리는 대부분 원형이며 할석이 부정형으로 목탄과 섞여 있거나 정연하게 돌을 돌려 만든 것이다. 유물은 화덕자리 주변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토기는 매우 조잡하게 시문된 횡주어골문과 무문양이 주류이며 격자문, 사선대문 등도 있다. 석기로는 간돌도끼·홈돌·격지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입지와 성격으로 보아 영종도 송산 유적과 동일한 성격의 유적으로 생각된다.

이 유적은 섬의 동북쪽 해안가 구릉에 위치한다. 이 유적에서는 구석기시대 고토양층이 확인된 반면 신석기시대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빗살무늬토기와 석기만이 소량 출토되었다. 토기는 구분계의 횡주어골문토기나 격자문토기가 있으며 석기는 소형의 간돌도끼, 돌그물추, 갈돌·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조사 지점의 상부에 있었던 유적이 침식되면서 아래에 재퇴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경기만의 섬과 해안의 저지대 및 구릉상에 위치하는 조개더미, 주거 유적이나 화덕자리와 같은 단순 유적이 발견되었다. 앞으로 해안지대에서의 주거 유적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경기만 일대의 신석기시대 흐름을 좀 더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청동기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와 간석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청동기를 제작 사용한 시기로서, 고인돌과 같은 정형화된 묘제(墓制)가 등장하고 농경을 주요 생업경제로 하면서 사회복합도가 한층 높아진 시대를 말한다. 청동기시대의 시간적 범위는 상한 연대를 기원전 1500년으로, 하한 연대를 기원전 400년 또는 300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역사적으로는 문헌의 내용과 고인돌, 비파형동검, 미송리형토기를 근거로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의 형성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청동기시대의 문화와 사회는 앞 시기보다 훨씬 다원화되면서 복합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농경생활이나 사냥이 자리 잡게 되었고 집도 강가나 바닷가가 아닌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는 지상가옥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한반도의 청동기문화는 중국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시기와 지역에 따라 북방지역과 중국의 중원지역 청동기 문화와의 관련성도 보인다. 중국의 청동기 문화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것이며 한반도 서해 연안지역, 특히 경기만 일원은 중국 동북지방은 물론 서해를 거쳐 중국 중원과의 주요한 교류통로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경기만 연안에서 대규모 택지조성 등 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다수 새롭게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경기만 일원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주거 유적은 유적의 밀집도를 기준으로 임진강 연안의 파주와 영종도, 인천북부내륙과 경기서부내륙지역 등 크게 5~6개 지역군으로 나누어진다.

 

① 파주지역 유적

파주지역에서는 옥석리·교하리·당동리·당하리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옥석리 유적은 파주시 월롱면 옥석리의 고인돌을 발굴하면서 그 바로 밑에서 움집터를 찾아내면서 알려졌다. 고인돌은 해발고도 약 100m의 구릉에 위치하며, 조사된 유구는 고인돌 6기, 집터 1기, 구덩유구 1기이다. 고인돌의 구조는 지상에 돌방(石室)을 갖는 북방식고인돌로 뚜껑돌(蓋石)의 크기는 1~2m 내외, 내부 규모는 50~100cm 정도로 비교적 소형에 속한다. 출토 유물은 편평편인석부, 돌칼조각, 조갯날도끼, 숫돌의 석기류뿐으로 토기류는 출토되지 않았다. 움집터는 길이 15.7m, 폭 3.7m, 깊이 0.6m의 세장방형으로 벽면은 수직으로 다듬고, 모서리는 직각을 이루고 있다. 구덩의 바닥은 진흙을 편평하게 깔아 다졌으며, 기둥은 벽면을 따라 일렬로 세웠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토기 외에 간돌칼·간돌살촉·돌가락바퀴·톱니날도끼·간돌도끼·숫돌·점판암제석재편 등의 석기류가 있다. 집터의 연대는 탄소연대측정치가 BC 7세기 후반경으로 나왔는데, 출토된 토기나 석기류의 상대편년도 이와 비슷하다. 이 유적은 1960년대까지 별 자료를 얻을 수 없어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고인돌과 집터의 구조, 또한 양자간의 선후관계를 뚜렷하게 밝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 고인돌이나 집터 연구의 밑거름이 된 중요한 유적이다. 고인돌 유적의 바로 이웃에서 이처럼 집터가 발견된 곳은 광명 가학동 유적이 있는데, 이것은 고인돌을 만든 당시 사람들이 집터 바로 곁에 그들의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서로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교하리 유적은 파주시 교하면 교하리의 장면산 능선에 있으며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면서 2채의 움집터를 찾아냈다. 고인돌은 남방식과 북방식이 섞여서 약 1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이 중 5기가 조사되었다. 3기는 개석만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서는 아무런 유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물로는 개석 아래에서 반달돌칼 1점만이 출토되었다. 1호 주거지는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내려 가서 만든 길이 9.5m, 너비 3.2m, 깊이 35~70cm의 장방형 움집터로서 불에 탄 것이다. 수혈의 중앙 장축선과 네 벽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구멍이 배치되었다. 화덕자리는 중앙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두 곳에서 발견되었다. 화덕들은 길이 60cm 정도의 타원형으로 아무런 시설 없이 우묵하게 패였다. 바닥에는 배수구로 생각되는 좁고 얕은 홈이 나있었다. 유물로는 깊은 바리(深鉢形)의 구멍무늬토기 조각과 편평단 인석부가 출토되었다. 2호 주거지는 한 쪽 모서리가 고인돌 밑에 들어 있었다. 역시 평면이 장방형이며 풍화된 화강암반을 파고 들어간 수혈이다. 규모는 길이 10m, 너비 4.4m, 깊이 50~70cm 정도이다. 기둥구멍은 벽면을 따라 많이 발견되었지만 배열이 고르지 못하다. 화덕은 남쪽 벽에 치우쳐 있었고 역시 주위에 아무런 시설이 없었다. 출토유물로는 마제석촉, 민무늬토기조각, 약간의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있다. 이 유적은 옥석리유적과 함께 고인돌의 선후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당동리 유적은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 일원의 LCD지방산업단지 부지에 대해 2004~2007년까지 기전문화재연구원(현 경기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이 유적은 문산천이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두물머리 위의 저평한 구릉에 형성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시대 고토양층과 신석기시대 주거지·수혈 야외노지,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수혈, 원삼국시대 주거지·밭·구상유구, 고려시대 석곽묘, 조선시대 주거지·토광묘·탄요 등 22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세장방형주거지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장방형(혹은 방형)의 주거지가 둘러싼 양상을 보인다. 즉, 능선부의 평탄한 곳에 세장방형 주거지가, 사면부의 경사가 급한 곳을 중심으로 장방형(혹은 방형)의 주거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주거지 밀집 지역에서 광장과 같은 특수한 용도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일정한 규모의 공터(空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세장방형주거지에서 옹형토기와 공열문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이중 석재 뚜껑과 세트로 출토된 것도 있다. 또 화성 천천리, 몽촌토성 유적 등에서 소수만 확인된 자루구멍이 있는 별도끼(星形石斧)가 출토되었다. 유구는 청동기시대 지석묘 하부구조 2기를 비롯하여 주거지 5기, 수혈 4기, 유기물포함층,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당하리 유적은 전원주택단지 신축부지 조성과정에서 확인되어 구제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구는 청동기시대 지석묘 하부구조 2기를 비롯하여 주거지 5기, 수혈 4기, 유기물포함층, 구상유구, 초기철기시대 토광목관묘 2기, 고려·조선시대 유적으로는 건물지 3동, 가마, 주거지 2기, 수혈 5기 ,구상유구 2기, 민묘 2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수혈 등의 생활유적과 지석묘 하부구조, 점토대토기단계 토광목관묘의 분포, 유물의 출토양상을 보면 이 지역이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에서 초기철기시대까지 일정한 시기 폭을 보이면서 상호 인접하여 확인되고 있다.

 

인천 내륙지역 유적

인천내륙지역에서는 원당동·불로동·원당4구역·검단2지구·문학동·동양동 등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원당동 유적은 인천광역시 서구 원당동 일대 고로개설공사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의 일환으로 2005~2007년 인하대학교박물관이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2003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고인돌 인접 지역에 대하여 실시한 조사로, 유적은 고인돌에서 서쪽으로 20~30m 정도 떨어진 해발 64m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며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형태는 세장방향으로 구순각목문토기편, 석제 방추차 등이 수습되었다.

불로동 유적은 인천 검단지역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 대해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3~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이 유적은 해발 10~20m 내외의 구릉에 위치하며 3·4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3구역에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 1개소,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근대 가마 1기가, 4구역에서는 삼국시대 주거지 3기, 가마 1기, 석곽형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형태는 미상이며 이중구연토기편과 석창 등이 수습되었다.

원당동 4구역 유적은 인천시 원당동 토지구획사업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의 일환으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2~2005년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유적이다. 원당동 4구역 유적은 3개의 구릉지대로 ‘가’지점, ‘나’지점, ‘라’지점으로 나뉘어 있다. ‘가’지점은 조사지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해발 30m 내외의 낮은 구릉부에 해당된다. ‘가’지점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9기와 수혈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나’지점은 조사지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7기, 수혈유구 3기, 기타유구 1기, 토광묘 2기가 확인되었다. ‘라’지점은 조사지역 구릉 남사면 하단으로 청동시대 주거지 5기, 근세 토광묘 1기,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장방형이 16기로 가장 높은 빈도수를 보이며, 방형 5기, 원형 1기, 형태불명 4기가 확인되었으며, 세장방형의 주거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석제 방추차,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검단동 2지구 유적은 인천시 검단동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 대해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인하대학교박물관이 2001~200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으로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2지구 2구역 ‘가’지점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 석렬유구 2기, 수혈유구 1기, 회곽묘 2기, 토광묘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1기와 장방형 1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중구연토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문학동 유적은 인천시 문학동에 위치한 문학경기장 절토잔여지에 대해 기전문화재연구원과 인하대학교박물관이 2000년 공동으로 발굴조사한 인천 문학동 선사유적과 지형상으로 연결되는 유적이다. 문학동 유적은 2007년에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고, 2008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 5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문학동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외에도 수혈유구 27기, 토광묘 1기, 회곽묘 2기, 민묘 5기, 미상유구 3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1기, 장병형 3기, 방형 1기가 확인되었으며 무문토기편·즐문토기편·방추차·석촉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동양동 유적은 인천시 동양동 택지개발사업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의 일환으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3~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모두 2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실시되었는데 1지구는 해발 16m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지대로 신석기시대 유구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 백제시대 주구묘(周溝墓) 1기, 토광묘 4기, 옹관묘 1기가 확인되었다. 2지구는 1지구의 동쪽에 위치하며 해발 32~33m의 야산지역으로 청동기시대 수혈유구 1기, 근세 이후 수혈유구 6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방형 2기와 장방형 1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돌대문토기, ‘ㄱ’자형석도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인천 도서지역 유적

인천도서지역에서는 영종도·운서동·중산동 유적 등이 발견되었다.

영종도 유적은 인천시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실시하는 예단포-중산동간 도로개설공사의 일환으로 2002~2006년까지 7개소에 대하여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Ⅱ지점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 1기와 근대 주거지 1기, 가마 3기, 수혈 12기가 확인되었다. Ⅶ지점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 조선시대 주거지 1기와 수혈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2기와 형태불명 1시가 확인되었으며 즐문토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운서동 유적은 인천공항과 연계한 복합도시 조성부지에 대해 중앙문화재연구원이 4개의 지점에 대하여 2007~2008년에 걸쳐 시·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Ⅰ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조개더미, 원삼국시대 분구묘, 근대 온돌건물지와 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Ⅱ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6기, 조선시대 토광묘가, Ⅲ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및 화덕자리,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 토광묘가, Ⅳ유적에서는 원삼국시대 이후의 수혈유구, 조선시대 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수습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2기, 장방형 2기, 방형 4기, 형태불명 2기가 확인되었으며 즐문토기편,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중산동유적도 운서동과 마찬가지로 인천공항 연계 복합도시 조성부지에 대해 중앙문화재연구원이 2007~2009년 시·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신석기시대 화덕자리 54기와 주거지 4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35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8기, 삼국·고려시대 석곽묘 1기, 고려시대 주거지 17기, 조선시대 주거지 40기, 미상 주거지 4기, 고려·근세 토광묘 88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장방형 14기, 방형 15기, 원형 1기, 형태불명 5기가 확인되었으며, 흑도장경호, 적색마연토기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시흥 지역 유적

시흥지역은 목감동·계수동·계수동안골·능곡동 등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목감동 유적은 시흥시 논곡동 일원의 목감중학교 건립사업 예정부지에 대해 2002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Ⅰ구역에서 부정형의 수혈유구 1기, 추정 토광묘 5기, 성격 미상 유구 2기가 확인되었으며, Ⅱ구역에서는 해발 67m의 낮은 구릉성 평탄면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으로 마연토기, 토제 방추차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계수동 유적은 시흥시 국도 39호선 우회도로 건설부지에 대해 2007년 한강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지역은 크게 3지점으로 나뉘어 있는데 도로구간 북쪽의 계수동 일대 구릉지를 1·2지점으로, 구간 남단의 하중동 일대 구릉지를 3지점으로 설정하였다. 1지점은 해발 40~69m의 구릉 사면지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 조선시대 토광묘 및 수혈 각 1기가 확인되었다. 2지점은 잔구성 구릉지의 말단부로 해발 20~30m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회곽묘 19기,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장방형 3기, 세장방형 1기가 확인되었으며 마연토기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계수동 안골 유적은 계수동 일원의 도로개설 부지에 대해 2001년 기전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은 해발 60m의 낮은 구릉의 끝자락의 해발 35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 청동기시대 수혈유구 1기, 고려·조선시대의 석렬유구 1기, 조선시대 분묘 5기, 시기미상의 토광묘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2기, 방형 2기, 형태불명 1기가 확인되었다.

능곡동 유적은 한국토지공사가 시행하는 국민임대주택 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의 일환으로 기전문화재연구원 2004~2007년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신석기시대 주거지,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수혈,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석실묘, 조선시대 주거지, 조선시대 이후 분묘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해발 30m 내외의 구릉과 구릉사면의 계곡부에 위치한 1지점에서 7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2기, 장방형 4기, 원형 1기가 확인되었으며 적색마연토기, 토제 방추차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화성 지역 유적

화성지역에는 북양동·남양동·정문리·천천리·수영리·동학산 유적 등이 발견되었다.

북양동 유적은 화성시 북양동 일원의 골프장부지에 대해 2006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발굴조사는 모두 3개 지구로 나누어 실시하였는데 2지구 해발 50m의 사면 하단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 조선시대 이후 토광묘 40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이 각각 1기씩 확인되었다.

남양동 유적은 화성시 남양동 일원의 도시개발사업부지에 대해 2005~2007년 기전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은 무봉산의 서쪽으로 뻗은 해발 90m 내외의 사면부와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주거지 12기, 삼국시대 주거지 1기,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기, 조선시대 주거지 110기, 숯가마 5기 등 다수의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7기, 형태불명 5기가 확인되었으며 대부소호대각편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정문리 유적은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 일원 고속도로 부지에 대해 2006~2007년 고려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해발 35m의 낮은 구릉성 산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조선시대 주거지 2기, 조선시대 분묘 19기, 수혈 2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방형으로 절상돌대문토기, 각목돌대문토기, 토제 방추차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천천리 유적은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일원의 도로부지에 대해 2002년 한신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은 해발 50~60m 내외의 가지능선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12기, 적석유구 1기, 백제시대 주거지 1기, 옹관묘 1기,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기, 조선시대 주거지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6기, 장방형 2기, 방형 2기, 형태미상 2기가 확인되었으며 반월형석도, 토제방추차, 석촉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수영리 유적은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일대의 공동주택부지에 대해 2005~2006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은 해발 35m의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나말여초·조선시대 주거지 14기, 조선시대 수혈주거지 3기, 통일신라시대 와요지 1기, 조선시대 이후 토광묘 44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5기, 장방형 3기, 방형 2기, 원형 2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즐문토기와 석겸(石鎌, 돌낫), 토제 어망추, 토제 방추차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조사 대상의 주거지 중에 유일하게 방추차와 어망추가 함께 출토된 유적이다.

화성 동학산 유적은 산업단지 조성부지에 대해 2003~2004년까지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44기, 환호(環濠, 인공도랑) 4열, 수혈유구 34기, 도랑유구 6조, 굴립주 4기와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7기, 석곽묘 1기를 포함한 분묘 4기, 탄요 4기, 소성유구 2기, 적석유구 2기 등 113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 13기, 장방형 27시, 방형 3기, 형태불명 1기가 확인되었으며, 즐문토기편, 고배형토기, 적색마연토기, 두형토기, 토제 방추차, 석제 방추차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경기만 지역에 위치한 파주·인천·시흥·화성지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출토 유물을 비교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경기만 지역 주거지들은 강이나 하천에 인접한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유적(마을)간의 위치도 조밀하다. 이 가운데 인천 북부내륙지역이 가장 조밀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둘째, 절대연대 측정법에 의한 주거지의 편년은 인천지역이 가장 이른 시기를 나타내며 화성, 시흥, 파주의 순서를 보이고 있어 경기만 지역 청동기문화가 단순히 해안선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개된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인천지역에서 이른 시기를 나타내는 이중구연토기와 각목돌대문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어 주거지의 절대연대 측정치와 부합하고 있다. 

셋째, 내륙이 아닌 인천 도서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주거지들이 확인되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반도 서해안지역의 청동기문화가 어느 특정 지역으로부터 짧은 시간 내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신석기문화에서 청동기문화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각 지역마다 독자적인 문화적 전개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경기만 연안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어망추가 거의 발견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반면에 농사도구를 대표하는 반월형 석도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기만 일대가 해안간에 인접한 지역으로 어로활동이 생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농경위주의 생활양식이 주된 생활수단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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